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가난해지는 이유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가난해지는 이유

세상은 한 마디로 규칙속에 규칙, 잊을만 하면 또 규칙들로 돌아가는 곳입니다. 아닌 듯 그런 규칙들로 둘러쌓여 돌아가는 곳입니다. 규칙을 따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나를 위한 규칙! 그 규칙이 올바로 세워졌는지 또 제대로 규칙을 찾았는지 제대로 관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룰 브레이커란 말을 아시나요? 세상에 널린 규칙 중에서 제대로 된 규칙과 잘못된 규칙, 즉 나를 해하는 규칙을 찾아내고, 과감히 룰 밖으로 벗어나는 결단을 내린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룰 브레이커가 왜 성공하는지 그 반대로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은 계속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규칙을 익히게 됩니다. 규칙.., 작게는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불리우는 “가정 교육”부터 나아가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회, 교우관계 등 알게 모르게 다양한 규칙들과 규칙들, 또 그 안에, 그 밖의 규칙들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수업의 시작 시간, 정해진 시간표대로 들어야 하고, 누굴 위해서인지 모를 야간 자율학습, 손 꼽으면 규칙 또 규칙, 우린 규칙을 빼놓고는 우리 일상을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우린 무언의 압박을 받고 이상한 굴레에 자신을 맞춥니다. 그리고, 그 규칙을 지키는 것이 공정하고 옳은 것, 어기는 것은 부정하고 틀린 것이란 최면에 걸리죠. 그리고, 아무런 의심없이 당연한 듯 그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진실을 믿고, 그 진실을 따라 행동합니다. 그러다 뭔가 성공을 꿈꾸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점검하다가 뭔가 큰 오류가 있음을 깨닫고, “각성”이란 것을 하게 됩니다.

누가 절차와 규칙을 만드는가?

제가 이런 사고를 하게 된 계기는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어른 동화를 읽고 나서부터 입니다. 얘기의 요점은 누군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고, 우매(?)한 서민들을 교육이란 도구로 세뇌시켜 사회를 구성하고 돌아가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우리가 아는 그들은 강자,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있고, 힘을 더 가진 사람들이 규칙을 만드는 겁니다.

이 규칙을 따라야 하는 약자, 규칙이라는 것이 억압처럼 다가올 수 있고 자신을 강제하는 힘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조금 무서운 얘기지만 약자가 강자가 되는 순간에 느끼게 됩니다. 규칙을 만드는 일이 무척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규칙은 대체로 암묵적은 합의의 결과입니다. 그걸 따르고 지키는 사람이 많을수록 조직과 사회는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습니다. 조직과 사회가 올바르게 유지되고 존속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바로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규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당장 작은 규칙을 깨트린다고 재앙이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규칙을 위한 규칙에 얽매입니다. 그렇다고 매사 모든 규칙을 어기라는 건 아닙니다. 제가 얘기하는 핵심은 때로 대의를 위한 규칙이나 프로토콜을 깨야 하는 순간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규칙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면 자꾸 가난해집니다. 기존 규칙을 깨야해요. 틀린 규칙 깨기로 그래서 난 그나마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한 발 벗어나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니 보였습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대체 누구의 삶, 누구를 위한 삶을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 눈에는 딱 우물 안에서 바라본 하늘이 온 세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게 세상의 전부고, 그것이 규칙인 겁니다. 그런 규칙과 규율을 따르는 것은 미덕이고, 제대로 된 사람이 갖춰야 할 소양이 됩니다. 마치 우물 속에 갇힌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그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옳다고 바르다고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믿고 따르는 규칙을 의심하고, 더 좋은 규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규칙이란 기존의 규칙을 개면서 나오게 되는 거란 사실을 깨닫는거죠.

뭐 이건 사실 국내나 국외나 크게 다를 게 없지만 그나마 유럽 학생들은 이런 면에서 대체로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너무 자유를 강조하다보니 그런 자유에는 책임이 필요하다는 걸 잊습니다. 뭔가 크게 깨닫기 위해서는 가끔 규칙 안에서 충분한 시간 자제력과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난 뒤에 자유를 찾아야죠.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학교 시절 강의실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대부분 질문하길 꺼립니다. 가끔 질문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을 아주 신기하게 생각하죠. 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달라졌어요. 소위 말하는 MZ세대, 자기 의견에 솔직하고, 세상 당당한 SNS 세대가 등장한 겁니다.

예를 들어 강의라는 건 선생과 학생이란 지위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고, 그런 약속 아래 한쪽은 지식을 가르치고, 다른 한 쪽은 그걸 수용하도록 설계된 일종의 사회적 시스템입니다. 이걸 흔히 교육 시스템이라고 말하죠. 여기서 아무런 질문도 안 하고, 전달된 강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사람을 결코 그 이상을 얻어 갈 수 없게 됩니다. 그냥 누군가 만들어 놓은 규칙에 순종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되어갈 뿐이죠.

우린 아무런 비판 의식을 갖지 않으면, 그러니까 이미 만들어진 규칙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추종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우물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규칙을 비판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그런 과정이 바로 ‘교육’이란 겁니다. 그런데 사실 그걸 악용하는 기득권층이 있어요. 맹목적으로 규칙을 따르는 사람만큼 다루기 쉬운 사람도 없죠. 빠른 사고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린 규칙을 깨기 위한 큰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런 큰 생각이 규칙을 벗어나는 기회를 열어주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찾게 만들죠. 우린 그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강한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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